창업자
창업자 수당 김연수 회장(1896~1979)
수당 김연수 회장은 19세기 말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 6·25전쟁, 4·19와 5·16, 경제 근대화의 시대에
살아오면서 정치, 사회적 격동의 한가운데서 우리나라 경제 근대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수당은 1896년 전북 고창에서 16세기 조선 성리학의 개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하서 김인후의 13대손으로 태어났습니다. 1921년 일본 경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수당은 이듬해 형님인 인촌 김성수 선생이 설립한 경성방직을 성공적으로 경영하였으며, 1924년 삼양사를 창업하여 한국 근대 기업사의 큰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또한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만주에 진출, 1939년 ‘남만 방적’을 설립하여 한국기업 해외 진출사의 첫 장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1961년 한국경제협의회 회장, 1975년 삼양사 명예회장으로 경제활동을 해오던 수당은 1979년 84세로 영면했습니다.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에도 적극 앞장선 수당은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의 설립 기금 조성 참여 등을 통해 건전한 사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1939년에는 한국 최초의 민간 장학재단인 양영재단을, 1968년에는 수당재단을 설립하여 장학금 지급 및 연구비 지원 등 인재육성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인간존중의 원칙’을 소중히 여기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수당은 일관 된 실천을 통해 많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업적들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 · 철탑산업훈장 ·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상했습니다.
창업정신
삼양훈
수당 선생은 “분수를 지켜 복을 기르고(安分以養福), 마음을 너그럽게 하여 기를 기르며(寬胃以養氣), 낭비를 삼가하여 재산을 기른다(省費以養財)”는 삼양훈을 정신적 가치로 삼아 중용정신(中庸精神)으로 평생을 살았다. 삼양훈은 삼양의 기업철학의 바탕이 되며 삼양문화의 출발점으로, 1931년부터 지금까지 사훈으로 사용하고 있다.